신앙의 땅_레지오마리애지 3-4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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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채바오로 작성일19-01-29 01:44 조회2,40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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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르심의 땅 마재
마태오 리치 신부의 저술 ‘천주실의’를 읽고 신앙을 받아들인 나주 정씨 가문에 의해 태동된 한국 천주교의 요람
글: 김현채 바오로/ 의정부 애덕의모후 Re. 명예기자
평신도에 의해 서양학문으로 전래된 천주교)
마재성지는 조선의 레오날드 다빈치에 비견되는 실학자 정약용(세례자 요한)을 낳은 나주 정씨가문의 본향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에 가톨릭을 전파한 계기가 된 이탈리아 예수회 출신 사제 마태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란 책을 통하여 소개된 서양의 실학사상을 종교로 승화시켜 조선천주교를 태동시킨 요람이다.
이곳에서 배출된 성인으로는 성 정하상바오로, 성녀 정정혜엘리사벳, 성녀 유조이 체칠리아
있으며,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복자 정철상가를로, 순교자 황사영알렉시오가 있다.
유배자로서는 정난주마리아(황사영알렉시오의 처), 정약전, 정약용세례자요한이 있다.
순교자 집안의 가계)
가계도를 보면 나주정씨 정재원은 두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남씨부인 사이에서 정약현을 낳았고 정약현의 딸 정난주 마리아는 순교자 황사영알렉시오와 결혼하였다.
둘째부인 해남 윤씨부인과의 사이에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삼형제를 두었고 정약종과 부인 유조이 체칠리아 사이에 정철상, 정하상, 정정혜 엘리사벳을 낳았다.
정약종, 정약용 형제의 어머니인 해남 윤씨가문은 남인계열 학자 집안으로 내외종간인 윤지충은 1791년 어머니제사 신주를 없앤 진산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최초의 순교자가 되는 영광을 받았다.
당파싸움의 와중에 속죄물이 된 서학)
천주교에 비교적 관대했던 정조사후, 순조가 즉위하고 노론벽파가 득세하자 정치적으로 대립되어있던 남인시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신유사옥을 통해 대규모 천주교도 탄압이 이루어지며 이때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등 신도와 청나라 주문모 신부가 처형되고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유배되었다.
2014년 8월16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아들 정철상 가를로와 함께 광화문에서 복자로 시복되었다.
성지 찾아가기)
청량리역에서 경의중앙선 용문행 열차를 타고 40분정도 걸려 운길산역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덕소역에서 환승하는 경우도 있다. 운길산역에서 성지까지는 4.7km의 거리로 택시로 7분정도의 거리이다.
성지 소개)
성지이면서도 본당으로 지정되어 있어 팔당면, 조암면의 교우까지 이곳 성가정 성당에서 관리하고 있고, 교적상 300명의 신자가 등록되어 있스며, 10시에 교중미사, 12시에 순례자 미사가 있다.
초대신부로서는 남궁경 현 교구관리국장 신부님이 부임하셨고, 현재는 2대 신부인 최민호 마르꼬 신부님이 5년째 이곳 성지를 관리하시며 산속으로 14처 기도처를 새로 만드시는 등 성지의 큰 틀을 꾸며 놓으셨다.
레지오는 2015년 10.16일 꼬미시움 직속으로 남성Pr.(순교자들의 모후-현재 남성단원 9명: 초대단장 이민남 프란치스꼬 현 연령회장)과 여성Pr.(성가정의 모후-현재 해체)으로 시작되어, 순교자들의 모후Pr.은 작년4월 혼성 평화의 모후Pr.으로 분단(현재 단원 13명, 곧 재분단 예정)을 하였다. 곧 3개의 Pr.탄생으로 Cu.가 만들어질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전통양식으로 지은 본당은 한옥으로 잘 꾸며져있었고 ‘도마성당’이라고 명명되어져 있었다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그 상처에 손을 넣어봐야 믿겠다는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신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않고 믿는 사람이야말로 진복자이다” 하신 말씀처럼
성직자로부터 전래된 종교이전에 평신도에 의한 가성직제도를 운용할 정도로 보지않고도 신앙을 받아들인 신앙의 선조들의 정신을 담아 명명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성당입구에는 ‘명례방’이라는 만남의 장소가 있고 로스팅한 커피를 즉석에서 갈아 마실 수 있도록 배려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안에는 이곳이 배출한 3명의 성인과 2명의 복자그림이 한국화로 제작되어 있었고, 두팔이 없는 의수화가(석화백)이 그린 14처 그림이 보존되어 있다. 작년 한.일 주교회의 때 이곳에서 미사를 마치고 다산유적지 순례후 의수화가의 그림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성전안에는 한복을 입으신 예수님이 십자가 틀없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계셨고, 제단은 5명의 순교자를 상징하는 형구가 새겨진 제단이 놓여있었다. 제단옆에는 매듭을 푸시는 한복을 입으신 성모님 성화가 장식되어 있었고,
그 오른 쪽에는 예수님께 보내는 사연이 꽂혀있는 나무십자가가 인상적이다.
성전 밖에는 순교자 현양동산이 조성되어 있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멜리데 마을 성당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오른 손을 내려 용서를 해 주었다는 십자가가 있다.
나약한 인간이 습관적으로 죄에 떨어짐에 사제가 뉘우침의 진정성을 의심하여 용서를 거부할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손을 내려 “그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은 그대가 아니다”라시며 용서는 하느님의 것이라고 하셨다는 그 유명한 십자가상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손을 잡고 기도를 청할 수 있는 성상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한강수원지보존을 위한 청정관리지역이라 건물의 신축이 원천적으로 불가하여 회합실을 추가로 지을 수가 없어 마당 곳곳에 몽고텐트가 들어서 있고 그 곳이 회합실을 대신하고 있었다.
새로이 콩밭을 구입해 마련한 가건물도 버섯재배용도와 같은 농경 용도로 제한되어 종교시설로 사용하기위해 계속적인 협의가 진행중이라고 하였다.
다행이 이곳이 한국 천주교발상의 성지로 인식되어 순례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행정관청에서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음은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신앙의 후손으로서의 다짐)
안타까운 것은 정조때까지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집안이 정조사후 역적의 집안으로 몰려 정약용의 생가는 강제로 해체되고 가문도 멸문지화를 입어 그 후손까지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음은 신앙의 후손인 우리가 져야할 책임과 의무라 할 것이다.
QR Code를 통한 마재성지 소개)
Play 스토어에서 ‘QR 코드 리더’를 설치하여 보시면 성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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